몇 년전, 유럽에서 마흔명의 광부가 석탄 갱도에 같혀 질식사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망연자실한 가족들이 광산입구에 모여 있는 가운데, 그 동네의 정신적인 지도자 한 사람이 조의를 표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는 무언가 위로를 줄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생각 끝에 그는 시드니 그린버그의 그의 책에 남겼던 말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우리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하지만 나는 몇 년전 저희 어머니께서 수를 놓아 제게 주신 서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합니다. 한쪽을 보면 색색의 수실이 아무렇게나 얽히고 설키어 있는데, 그걸 보면 저희 어머니께서 무슨 생각을 하며 만드셨는지 의아해집니다.
하지만 그 서표를 뒤집어 보면, 비단 수실로 예쁘게 수놓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오늘 이 순간, 우리는 이 한쪽의 비극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다른 한쪽의 의미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믿고 기다립시다."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현실을 분명하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지러운 색색의 수놓는 실이 마구 뒤엉켜 있는 서표의 뒷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쏟아온 노력들 그 시간과 땀들이 '아무렇게나' 보여지고 '아무런 보람과 결실'이 없이 보여지는 상실감과 허탈감으로 자신을 채우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습장 한권을 다 써가도 도저히 방정식문제를 풀어내지 못할 때처럼, 수학이란 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수학이 싫고 공부가 싫어질때 처럼 나의 모든 행동이 수를 놓은 서표의 뒷면에 엉망으로 얽히고 설킨 것처럼 '방향'과 '이유'와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나는 위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고,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교만입니다.
노력하나만으로 산을 옮기겠다는 각오 또한 분별없는 열정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부터, 도저히 더이상은 알지 못하겠다는 부분부터 , 저는 거기서 부터 새로운 시작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부터는 지식과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름다운 색실로 수 놓아온 '서표'에는 무엇이 적혀 있겠습니까?
복잡하게 얽히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서표의 뒷면은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우리는 어쩌면 어느 한쪽면을 보고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반대면 아니 원래 내가 만들고자 했던 보이고자 했던 그 면에는 내가 믿는, 내가 의도한 글자가 또는 그림이 수놓아져 있을 겁니다.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그 지점부터는 믿음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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